장화를 신은 여자들을 읽고

장화를 신은 여자들을 읽고 /전재민
 
                         시인 천지경의 [울음 바이러스중에서]
 
새벽 5시면 출근하는 종합병원 급식소
여자들은 장화를 신는다
커다란 강철 솥이 쿵쾅대고, 노란 카레
물이 용암처럼 끓어 순식간에 설거지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곳, 발에 물을
적게 묻히려면 장화가 필수품인 그곳에
집에서 살림만 살던 여자 한 명이
입소했다 설거지 코너에서 하루를 견딘
여자는 화장실에 앞치마와 장화를
벗어놓고 사라졌다
장화를 신는 곳에서 일을
못하겠다 했단다 25년을 장화 신고 일한
큰언니가 식판을 닦아 던지면서 하는
한마디
“씨발년, 그라모 집구석에서 가랑이나
벌리고 누웠지 머하러 와서 염장을
지르고 가노.”
숫돌에 벼르던 칼날을 손가락에 대어보는
둘째 언니, 광기 두른 칼이 얌전히 칼집
소독기로 들어간다 이내 코를 고는
칼들이 쉭쉭 숨소리를 내뿜는다
 
노름꾼 주정뱅이 남편과 살면서 자식
일곱 키운 여자
퍼들퍼들 살아 있는 엄마 욕이 듣고 싶다
오전 10시, 전쟁하러 가자는 큰언지
호령에 잠시 눕힌 땀벌창 몸 일읔 세워
터벅터벅 몰가 가는 장화 신은 여자들.
 
 
작가는 작가 노트에 이렇게 말한다. 내 시들 중 유독 애착이 가는 시들이 몇편 있는데 이 시가 그중 1편이다. 집에서 살림만 하다가 처음 발길을 들인 곳이 병원 급식소다. 급식소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나의 시 몸으로쓴 시라고 해야 될까? 몸으로 말하는 여자들, 노동으로 먹고 사는 여자들은 씩씩하다. 욕도 잘한다. 그러나 그 내면은 열서 울기도 잘한다. 억척스럽고 강한듯 보이지만 착하다. 내 새끼 내 부모 위해서 악착같이 벌겠다는 의지가 있는 위대한 대한민국 아줌마들이다. 내 어머니도 욕쟁이 할머니다. 새끼들을 위해서 나는 절대 쓰러지면 안된다. 사진육신 멀쩡한 몸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해서 먹고 살 수 있다던 장한 어머니들, 자! 오늘도 내 가족을 위해서 장화 신고 방수치마 두르고 씩씩하게 밥하러 가자- 천지경-
 
 
 
詩人 천지경은 2009년 불교문예로 등단,등단 11년차의 시인으로 진주 중앙병원 장례식장 급식부에 근무한다.
산 자를 위한 밥을 하고 죽은 자를 위한 제상을 차리는 게 그녀의 직업이다.
그녀는 일상에 모든 일처럼 죽음을 접대하고 떠나보내며 산사람의 배를 채우는 일을 하는 직업을 가졌다.
시쳇말로 아무리 씻어도 주방의 찌든내가 나고 아무리 광을 내도 광이 나지 않는 그녀의 일상은 죽음과 함께하는 삶이고 남루하고 그 삶은 처절해서 칡뿌리처럼 질겨야 살아 갈 수 있다.
시인들이 대부분이 자기의 직업을 갖고 생활을 한다.
고상하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그 보다 더 대학교에서 교수님 소리를 들으면서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면 어디가서 체면도 제대로 서고 좋겠지만 그런 기회가 모든 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천지경시인은 10년이 넘는 동안 처음 시집을 냈다.[울음 바이러스]라는 시집을 냈는데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대부분 생활속에서 특히 그녀의 직업과 관련이 깊은 시들을 쏟아 낸다.
그녀의 본명은 천선자 일제시대에 일본식 이름이 이 자자로 끝나는 이름이라고 알고 있다.
많은 여자들의 이름이 이 자자로 끝난다.
 
위의 시에서
“이내 코를 고는 칼들이 쉭쉭 숨소리를 내뿜는다”는 부분이 시퍼렇게 날이 선 화를 칼집에 집어 넣고 코고는 모습이 씩씩하게 살아 가는 아줌마들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씨발년, 그라모 집구석에서 가랑이나
벌리고 누웠지 머하러 와서 염장을 지르고 가노.”
이 부분은 누군가 꼭 내 가슴에 담겨 있던 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신 시원하게 물한바가지 퍼붓듯이 쏘아준 그 시원한 욕이 이 시의 압권이 아닐까 싶다.
 
 나는 600명의 식사를 준비하고 배식하는 일을 서울에서 잠시 동안 한 적이 있다. 직원식사를 담당하는 곳은 그 양이 어마무시하다. 밥도 영업용밥솥에 씻어서 넣어야 하는데 3계단으로 된 밥솥 넣어 밥하는 기계는 밥솥을 넣는 것부터가 노가다이다. 나물을 볶거나 고기를 볶을 때도 큰 솥에 넣고 쇠로 된 삽으로 열심히 저어 주어야 한다. 밥솥을 넣는 일이나 고기를 볶는 일같은 힘든 일은 남자들이 하고 나머지 칼질등은 여자들이 하지만 워낙에 양이 많다 보니 힘들기는 매일반이다. 김치도 커다란 고무통에 외부 하청업체에서 들어 오지만 김치를 써는 일조차 만만치 않다. 그리고 배식시간에 600명을 배식하고 나면 말그대로 파김치가 된다. 그리고 나서 점심을 먹고 아침조 퇴근하고 오후조는 다시 저녁준비를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설겆이야 담당하는 사람이 하지만 한식이 워낙 그릇이 많이 나와 일일이 씻는게 쉽지 않다. 물론 캐나다에서는 대부분 디시워셔 머신에 넣어서 하지만 한국은 손으로 하는 곳이 많았다.
직원식당에서 하루 일하면 밥먹는 일이 쉽지 않음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 05/0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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